벌써 해가 많이 길어졌다. 쨍쨍한 햇살을 맞으며 난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서 길바닥을 샅샅이 뒤지고 있다. 벌써 5시가 넘어가는데 완전히 서울 하늘은 대낮처럼 밝다. 이제는 완전히 여름이라도 말 할 수 있다. 일본에서 살 때는 해가 밝고 참 길어서 적응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었다. 서울에 와서 7시면 완전히 밤이 되어버리는 서울의 짧은 낮 길이에 당황했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면 머리 속은 아직도 한적했던 산 중턱에 위치한 일본 고베의 스미요시에 있었고 몸이 복잡한 서울의 한 복판에서 정신을 차렸다. 그런 불일치가 한 몇 주는 걸렸던 것 같다. 이젠 이쪽의 생활에도 적응이 되었다. 나나 내 주변의 사람들을 보아도 여행 후의 우울증이 낫기 위해서는 짧게는 한 주 길게는 한달 이상이나 걸린다.
귀국 후에 이런 일시적인 환경 쇼크가 있을 것을 예상했다. 그 대비책으로 일본에서도 주기적으로 했었던 운동을 하기로 결심했었다. 전에는 운동으로 살사를 꾸준히 췄었다. 지금은 사이클을 타고 있다. 컨디션이 좋은 날은 집에서 학교까지 1시간 30분을 달린다. 지하철로도 2시간이 걸리는 거리이다. 또는 자전거를 접어서 지하철에 들고 들어갈 수 있다. 한국의 공중 도덕이 일본에 비해서 약간 엄격하지 않는 것을 불만스럽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덕에 자전거를 특별한 조치 없이 지하철 안에 들고 탈 수 있다. 좋아해야 할 일 같지는 않다. 한국에서 자전거처럼 커다란 짐을 들고 지하철에 승차하는 것에 특별한 제재를 받기 전에 많이 타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뻐근한 고개를 들어 보았다. 내 접이식 자전거는 옆에 새워져 있고 장갑과 마스크는 헬멧에 담겨 자전거 손잡이에 걸려 있다. 벌써 이렇게 쭈그리고 앉아서 길바닥을 뒤지고 있는 것이 20분은 넘은 것 같다. 해질녘의 햇살은 정오 때와는 달리 약간 붉은 색을 띄고 있다. 난 해가 뉘엿뉘엿 질 때는 기분이 우울해진다. 계속 구부리고 있던 허리가 아프기도 했지만 더 이상 어두워지면 길바닥이 잘 보이지도 않거니와 기분이 가라앉을 것 같았다. 그만 찾기를 포기하고 돌아가고 싶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 무리하게 뺀 것이 잘못이었다. 작은 사이즈에 바람에 날려 어디론가 없어져 버린 것이 당연하다.
이걸 잃어 버리고 다시 만드는 데 가격이 얼마나 들까 생각해 봤다. 비싸다. 귀국 후부터는 나름 절약생활을 하고 있었다. 절약생활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우선 일본에 갈 비행기 삯을 마련하는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몇 개 하면 금방 모을 수 있는 돈이지만 현재 주어진 내 시간을 소중히 하고 오직 학위 따는 곳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학교에서 받고 있는 90만원이라는 장학금으로 생활을 하고 저축까지 하려면 이렇게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절약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앞으로의 꿈은 유럽에 나가서 사는 것이다. 물건을 아끼는 습관이 몸에 베지 않으면 어느 곳에 가서 살아도 힘들 것 같았다.
다시 기합을 넣고 바닥을 더 더듬어 찾아보았다. 바로 앞에는 가로수 한 그루가 싶어져 있었다. 그 밑에는 무당벌레, 개미, 기타 이름 모를 벌레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도심의 길가는 곤충이 살기 힘들기 마련인데 가로수 한 그루 밑에 있는 작은 풀밭은 그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동식물이 살고 있는 소우주 같아 보였다. 그런데 이 작고 복잡한 곳으로 들어가 버렸으면 찾는 것을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자전거에 앉았다. 처음에 떨어트린 손 높이에서 이번엔 바람에 잘 날리는 나뭇잎을 날려보았다. 나뭇잎이 떨어진 것은 자전거와 그 가로수의 정가운데였다. 눈짐작으로 의심이 가는 위치를 확인해 놓았다. 바람의 변수는 예측하기 힘들어서 머리를 써서 찾아보자는 나의 이러한 시도가 바보 같아 보였다. 그렇지만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자고 결심했다. 일본에서 가지고 온 물건들에는 하나같이 잊지 못할 추억들이 담겨있다. 처음 이걸 만들러 갔던 병원에서는 창구에 있던 간호사를 잊지 못하겠다. 환자나 손님들 앞에서는 큰 체격과는 달리 아주 가늘고 높은 목소리로 はいはい를 말하셨던 분이 뒤돌아서는 체격에 걸맞은 매우 저음의 아줌마 목소리로 변하셨다. 그게 벌써 8개월 전 일이다.
그런 추억이 담긴 물건을 더 소중하게 하지 않고 이렇게 잃어버리는 것이 안타까웠다. 집에 가다 말고 자전거를 세워두고 손에서 떨어뜨린 것을 찾기 30분이 지났다. 순간, 내 왼쪽 발 앞에서 붉게 타오르는 햇살에 반사되는 작은 물체를 발견했다. 앗. 렌즈 찾았다! 집에 가던 길에 겪은 이 작은 에피소드는 내가 그 동안 매일 접하는 물건이나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일깨워 주었다. 그걸 깨닫는 순간 나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무당벌레는 아직도 어딘가를 분주기 기어가고 있었다.
함께 영원히 할 수 없음을 슬퍼하지 말고 잠시라도 함께 할 수 있음을 기뻐하고
더 좋아해 주지 않음을 노여워하지 말고 애처롭기 까지한 사랑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주기만 하는 사랑이라 지치지 말고 더 많이 줄 수 없음을 아파하고
남과 함께 즐거워한다고 질투하지 말고 그의 기쁨이라 여겨 함께 기뻐할 줄 알고
이룰 수 없음이라 일찍 포기하지 말고 깨끗한 사랑이라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나는 그렇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한용운의 '인연설'중-
+:+ Ms. Chihiro Yamanaka helped me with her brilliant sense of literature.
대학생 모델 선발을 위한 오디션에 나갔다. 장소는 서울역 앞 플라자 호텔의 지하 1층에 자리잡은 Bar. 대학생들 파티를 주선하는 회사에서 이번 이벤트로 대학생들 중 남자 여자 한명씩 자신의 회사의 CM에 메인으로 나갈 모델을 선발하는 오디션을 오늘 파티에서 이벤트 형식으로 실시한다는 메일을 몇 주전에 받았었다. 학생의 신분에서 입장료도 적지 않고 어린 것들이 모여서 부르주아적인 파티를 이끌어 나간다는 점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1년이 넘게 끊임없이 메일로 파티 초대장이 날라왔고, “특별히 선택된 당신이 이번 자리를 빛나게 해주세요.” 라는 광고문구는 나의 마음을 조금씩 움직였다. 급기야 이번 모델 오디션 이벤트에서는 학은 학교의 서클 후배들도 같이 참석하자고 종용을 해 와서 금요일 밤, 딱히 할 일도 없던 나는 참석을 결심했다. 그리고 단신임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운동으로 가다듬은 몸매를 믿고 모델 오디션에도 출전을 했고 그 장소에는 대학의 서클 후배 여자아이들도 몇 보였다. 선발 기준 중에 하나인 워킹은 이전에 내가 직접 재즈 댄스 강자를 초빙해 수업을 받은 일이 있었기에 큰 어려움이 없었으나, 당일 알아낸 것은 자신을 잘 뽐낼 수 있는 특기가 하나가 기준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앞의 후보자가 사회자에게 부탁하여 시끄러운 팝을 틀고 이상한 춤동작으로 자신의 장기를 부랴부랴 넘어가는 것을 보고 머리 속에서 살사가 생각났다. 때마침 주변에 같은 살사 클럽의 여자 후배 둘이 보였다. 한명에게 부탁을 했지만 그 여자에는 살사보다는 스윙을 많이 추던 애라서 살사는 조금 약했고, 게다가 남 앞에서 잘 나서기를 꺼리는 성격이라서 반대를 했다. 두 번째로 눈에 띠였던 남 앞에 잘 나서기를 좋아하는 후배 여자아이. 이 아이랑 싸워서 학교 클럽에서 쫓겨나고 당시 내 동생처럼 여기며 친하게 지냈던 클럽 회장이랑 통화로 큰 목소리로 감정적으로 싸웠던 과거가 있지만 지금은 이를 따질 상황이 아니다. 그 아이와는 같이 공연 한 적도 2003년도에 커플로, 학교에서 나의 살사 클럽 활동의 마지막이 되었던 2004년도공연에도 같은 팀으로도 있었기에 호흡이 잘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차례가 더욱 가까이 다가왔고 마음이 더욱 다급해 졌다. 그 앞에 다가가서 다음 차례에 같이 장기에 나가서 같이 살사를 추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다. 그 아이는 단신에 토실토실하여 여자가 남자 팔에 안겨서 다리부터 시작하여 머리를 허리뒤로 떨어트리고 360도를 도는 고난이도의 플립 등의 아크로바틱 동작을 하기에는 부담이 가는 체형의 파트너였지만 나름대로 2년동안 이 살사계에서 얼굴을 보아서 춤추는 패턴은 서로 익숙해 져 있는 사이였다. 비록 2년전의 일로 아직도 둘은 말을 안하고 지냈지만 나의 다급한 제안에 그 아이는 순간 상황을 파악하고 자신에게도 득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는 승락을 했다. 그러나, 순간 머릿 속에 드는 생각은 살사를 출 음악이 주최측에서 준비를 해두었을 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다행히 매일 가지고 다니는 MP3 플레이어가 생각이 났다. 파트너도 있고, MP3플레이어도 있고 비록 바닥은 카페트라서 턴을 하기에 쉽지는 않겠지만 이전에 몸에 익혀두었던 공연 패턴 중에서 턴을 적게 돌면서 겉 보기에 화려했던 동작이 무엇이었나 기억을 되새겨 보았다. 이제 다음이 나와 차례가 되었다. 떨리는 마음에 다시 한번 나의 손가락 크기만한 아이리버 MP3를 손에 꼭 쥐었다. 작은 크기의 MP3를 산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항상 들고 다니면 언제 살사를 추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다. 순간 오늘 오디션에서 나의 결과가 좋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한 동안 체육관에서 몸을 만드느라 고생했는데, 이제 다른 후보자들이 놓칠 특기 부분에서 난 큰 점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드디어 차례가 되어서 우선 파트너와 함께 손을 잡고 무대위로 올라간 다음 우선 워킹 시연보다 먼저 특기를 먼저 보여주겠다고 사회자에게 말을 하고는 MP3 플레이어를 건넸다. 사회자는 작은 회색 아이리버 MP3플레이어를 받아 들고는 이 안에서 어떤 음악을 틀어줄 까요? 라고 물었다. 나는 길이는 가능한 3분 내외로 짧고 카펫 바닥에서 턴이 힘든지라 박자가 너무 빠르지 않는 음악, 그리고 너무 느리면 패턴 사이에 비는 동작이 어색하기에 적당한 빠르기의 음악을 찾으려 했다. 그런데 아뿔사! 바로 몇일 전에 앞으로 불어 공부만 열심히 한다고 결심을 하고는 MP3플레이어 안의 살사 폴더를 전부 지워버렸던 기억이 되살아 났다. 파트너는 옆에서 무슨 일이냐며 화들짝 놀란 나에게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왔고 사회자는 시간이 부족하니 속히 선택해 달라고 종용했다. 정말 내 인생에서 최악의 상황이었다. 눈을 꼭 감고 이 순간이 꿈이기를 바랬다.
머리가 뻐근한 나는 스미요시 기숙사 방안의 침대에서 얼굴을 베개에 묻고 MP3플레이어에서 시작하는 이어폰 선에 얼굴과 목이 칭칭 감긴 체 잠에서 갰다. 그리고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책상의 노트북을 열고 살사 MP3 폴더를 플레이어 안으로 복사해 놓았다.
제가 책이랑은 좀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였습니다. 그러다 정말 독서 부족에 이러다 바보가 되는 것이 아닐까 염려가 되기 시작했고. (유학중이라 전공 관련 책은 읽습니다. -_-;) 일본에 살다보니 한글 읽어 볼 기회도 없어서 지난번 대전 고향에 잠시 방문했을 때 책꽂이에 남겨 있던 책을 한권 들고 왔습니다.
그 책은 2년전에 알고지내던 서울에 살던 여자애한테서 생일 선물로 받은 것이였습니다. "그리스 인 조르바"라는 책이였는데요. 첫 페이지부터 조르바라는 사람은 안나오고 그리스 지역 항구의 한 술집의 묘사만 잔뜩 해 놓아서 읽기를 포기하고 그대로 일년이 넘도록 꽂아 두고만 있었습니다.
독서생활을 시작하자고 결심을 하고는 매일 15분씩만 책을 읽을 계획으로 그 두툼한 책을 들고 매일 조심씩 참아가며 읽기 시작했습니다. 읽다보니 차츰 재미도 붙고 해서 이게 독서의 맛이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책의 1/3 지점에서 얇고 작은 꽃무늬 메모 한장에 그 여자애가 써서 숨겨 놓았던 종이 쪽지 하나가 끼어져 있었습니다. "제일 좋아하는 책이니 젤 좋아하는 오빠한테 선물하고 싶어요.." 이런.. 내용이였는데요. 일본 고베 산 중턱, 우중충한 기숙사의 화장실 한 구석에 앉아 몇 주전에 그 책을 읽다가 2년만에 그 쪽지를 발견하고는 엄청 놀랐습니다. 기쁘기도 했거니와 지금은 둘 연락안하고 지낸지 한참 되어서 매우 안타깝기도 했고요. 아마 절 테스트 했는 것이 아니였나 라는 생각도 드네요. 제가 독서 습관이 있었다면 그 여자애랑의 관계가 좋게 되지 않았을까라는 후회도 듭니다.
오늘 왠지 기분이 우울해서 매일 조금씩 아끼면서 읽던 그 책을 다 읽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2년동안 연락처가 바뀌었을 것 같기는 하지만... 혹시 두번째 책을 추천해서 멜로 알려줄수 있냐고 멜을 보내봤습니다. 오늘은 옛날 사람들이 많이 생각이 나는 하루네요... 여러분 독서하는 생활을 기르도록 합시다!!! (애인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_-; )
minki (2006-05-04 19:24:38) 처음으로 닉을 변경해 봅니다. 그 동안 실명을 써 왔었는데.. 저와 이름이 비슷한 분이 세분은 계셔서요.. -_-;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참고로 주력 기종은 zire 21 입니다.
㈜몽환작가 (2006-05-04 19:37:24) 연락 하셨나요? 바로 연락해보세요. 여자들은... 잊은 듯 하면서도 무척이나 오래 기다린답니다. -- -- (때론 무서워요......)
칼날 (2006-05-04 19:58:22) 영화같은 아름다운 스토리가 예상됩니다.... ㅋㅋㅋㅋㅋ a ww (2006-05-04 20:12:43) 정말 영화네요. 해피엔딩으로 끝나기를 바랍니다. ^^ 책을 선물 받으면 휘리릭 페이지부터 확인해봐야 한다는 교훈을 배웠습니다. ^^;
왕초보 (2006-05-04 20:23:33) 잘 되시길. ㅠㅜ
Tale™ (2006-05-04 20:29:16) 정말 잘 된다면, 한평의 영화같은...^-----------^ 왕초보 (2006-05-04 20:37:10) 영화가 된다면 시작할때 나오는 화장실씬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대략 난감. :)